넥서스 - 유발하라리
넥서스 (Nexus) - 정보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정보는 진실이 아니다. 정보는 연결한다."
독서를 통해 책에 대한 내용들을 기록하며, 기록을 필두로 리뷰를 작성해보려 한다.
그 시작을 알리는 책이 바로 유발 하라리의 4번째 신작 넥서스다.
📖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사피엔스부터 넥서스까지
예전에 JTBC의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방송에서 소개되던 책들이 흥미로워서 하나씩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발 하라리라는 이름과 가까워졌다.
🦍 『사피엔스』 – 허구를 상상한 유일한 종
『사피엔스』는 "왜 수많은 인류 중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엄청난 힘을 **"허구를 상상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공유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청각 능력에 비해 말하는 능력, 즉 이야기를 구성하고 공유하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이것이 협력과 문명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힘이었다.
『사피엔스』는 인류의 역사를 네 가지 큰 혁명으로 나눈다:
- 인지 혁명 – 언어, 허구, 협력의 시작
- 농업 혁명 – 정착과 제국의 탄생 (하라리는 이것을 "인류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한다)
- 인류 통합 – 화폐, 제국, 종교의 등장으로 지구적 집단 형성
- 과학 혁명 – 인간이 신의 계시가 아닌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질문하기 시작한 혁명
👤 『호모 데우스』 – 신이 되려는 인간
『사피엔스』가 과거를 탐색했다면, 『호모 데우스』는 인류의 미래를 전망한다.
전염병, 기아, 전쟁 등 고전적 위협이 제어 가능해지자, 인류는 세 가지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 불멸(Immortality) – 죽음을 기술로 극복
- 행복(Happiness) – 감정을 설계하고 조절
- 신성(Divinity) – 생명을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능력
하라리는 새로운 신념 체계인 **데이터교(Dataism)**를 소개한다.
생명은 알고리즘이고, 세상은 데이터 흐름이며, 최고의 가치는 데이터의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이념이다.
이 관점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진 자가 신이 된다"는 윤리적·사회적 딜레마가 등장한다.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일
이 책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다룬다.
민족주의, 정보의 홍수, 기후 위기, 테러, 교육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통찰과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라리 특유의 구조적 시각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들을 던졌던 책으로 기억된다.
🚀 바쁜 분들을 위한 『넥서스』 3분 요약
- 정보는 진실이 아니다: 정보의 진짜 목적은 '진실 전달'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 AI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 인쇄술과 달리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연결을 조종하는 '비유기적 행위자'다.
- 우리의 과제: 알고리즘이 만든 '정보 고치'를 깨고, 스스로 수정할 수 있는 '자정 장치'를 회복해야 한다.
📘 그리고 『넥서스』 – 정보의 시대를 꿰뚫다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는 68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보사회에 대한 철학적·사회적 탐색을 담고 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관통하는 그의 핵심 질문이 AI 시대를 맞아 어떻게 진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을 버려라
하라리는 책의 서두부터 우리가 가진 정보에 대한 통념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우리는 보통 정보가 많아지면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도 이런 전제 위에 사명을 세웠다.
그러나 하라리는 이를 '순진한 정보관'이라 부르며 강하게 반박한다.
그가 제시하는 관점은 이렇다:
- 정보의 본질은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연결(connection)이다
- 역사적으로 성공한 정보 네트워크는 진실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고 질서를 만들어냈다
- 점성술, 종교, 신화는 대부분 허구였지만, 수천 년간 문명을 지탱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예를 들어, 성경 속 예수가 실제 인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의 현실을 공유하며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 세 가지 현실: 객관적, 주관적, 상호주관적
하라리는 세상에 세 가지 현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 객관적 현실: 돌, 산, 소행성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물리적 실재
- 주관적 현실: 고통, 행복, 즐거움 같은 개인의 내면 경험
- 상호주관적 현실: 법, 신, 국가, 기업처럼 사람들이 함께 믿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이 중 상호주관적 현실만이 정보 교환을 통해 생겨난다. 국가가 좋은 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볼 수 있듯, 어떤 나라들은 팔레스타인만 인정하고, 다른 나라들은 이스라엘만 국가로 인정한다.
허구적 이야기가 거짓말이 되는 경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처럼 가장할 때뿐이다.
헌법은 인간이 만든 질서라는 것을 인정하며 시대에 따라 변해왔지만,
성경의 십계명은 창조주가 만든 절대적 질서라 주장하며 변화를 부정했다.
이것이 둘의 결정적 차이다.
⚖️ 진실 vs 질서: 모든 정보 네트워크의 딜레마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 진실 발견 –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 질서 유지 –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
문제는 이 둘이 종종 충돌한다는 점이다.
성경이나 코란 같은 거룩한 책들은 '무오류'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덕분에 수천 년간 질서를 유지했지만, 스스로의 오류를 수정하는 자정 장치가 없었다.
반면 과학은 달랐다. 과학혁명의 진정한 촉매는 인쇄술이 아니라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태도였다.
과학의 트레이드마크는 무조건적인 회의가 아니라 자기 회의(self-correction)다.
자정 장치는 진실 추구에 필수적이지만, 질서 유지 측면에서는 손해다.
의구심, 논쟁, 갈등을 일으키고 신화의 힘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과 질서 사이의 영원한 긴장이다.
🏛️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정보 네트워크의 두 가지 형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정보 흐름의 구조다.
- 전체주의: 모든 정보가 중앙 허브를 통과해야 하며, 독립적인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 민주주의: 정보가 여러 독립적인 채널을 통해 흐르고, 많은 노드가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라리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다수결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아무리 다수라도 빼앗을 수 없는 특정한 자유들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제도다.
소련 시민과 미국인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미국인은 질문을 하면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지만,
소련 시민들은 질문을 하면 곤란에 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노예제를 지지하고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실수를 범했지만,
후손들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도구를 남겼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 AI: 최초의 '비유기적 행위자'
이전의 정보 기술(인쇄술, 라디오, 텔레비전)은 도구였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사용했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AI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며, 심지어 인간을 조건화할 수 있는 독립적인 행위자다.
하라리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한다
- 지능(Intelligence):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
- 의식(Consciousness): 고통, 쾌락, 사랑 같은 주관적 감정을 경험하는 능력
AI는 지능은 있지만 의식은 없다. 문제는 지능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 정보의 연결이 만들어낸 비극 – 미얀마 로힝야 사태
페이스북 알고리즘의 위험성이 가장 참혹하게 드러난 곳이 미얀마였다.
2016~2017년 페이스북은 '사용자 참여 극대화'라는 목표를 알고리즘에 부여했다.
알고리즘은 수백만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험하며 분노가 참여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분노를 퍼뜨리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2010년대 초반, 미얀마는 정치적 자유화의 흐름 속에 있었다.
오랜 군부 독재가 느슨해지며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대"라는 낙관론이 돌았다.
페이스북은 정보 전달 플랫폼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플랫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다수 불교 민족과 소수 이슬람 민족인 로힝야족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고,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로힝야족"이라는 허위 정보와 혐오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2017년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
유엔은 이를 '교과서적인 민족 청소'라고 규정했고,
2018년 유엔 진상조사단은 페이스북이 민족청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발표했다.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7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 참여'를 극대화했을 뿐이다.
그 결과가 학살이라는 사실을 알고리즘은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 데이터는 재료, 연결이 방향을 정한다
흔히 AI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라고 말한다.
더 많은 데이터, 더 좋은 데이터를 가진 자가 승리한다고. 그런데 하라리는 데이터보다 연결에 주목한다.
처음엔 의아했다. 연결이 이루어지려면 결국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나?
로힝야 학살도 결국 거짓 정보, 즉 잘못된 데이터가 퍼졌기 때문에 일어난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이런 비유가 떠올랐다.
데이터는 냉장고에 쌓인 식재료와 같다. 고기, 채소, 양념... 그 자체로는 요리가 아니다.
신선하든 상했든, 냉장고 안에 있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연결은 그 재료를 꺼내 요리하는 과정이다.
같은 재료로 누군가는 따뜻한 집밥을 만들고, 누군가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든다.
재료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서로 손질하고, 어떻게 조합하고, 누구 앞에 내놓느냐가 결과를 결정한다.
로힝야 사태를 보자. 상한 재료, 즉 거짓 정보가 냉장고에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재료가 "존재"했다는 게 아니다.
알고리즘이라는 셰프가 그 상한 재료만 골라서, 특정 사람들에게, 맛있어 보이게 포장해서 반복적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먹었다. 상한 줄도 모르고.
더 무서운 건 이거다. 상한 음식을 먹으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연결이 잘못됐을 때? 아무런 경고도 없다.
오히려 알고리즘은 그 연결을 강화한다. "너와 비슷한 사람들도 이걸 봤어.
" 잘못된 연결이 자연스러운 연결처럼 느껴진다.
상한 음식은 버리면 된다. 잘못된 연결은 어떻게 끊어내는가?
우리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다.
🔗 상호 컴퓨터 현실의 등장
인간이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들어내듯, 컴퓨터도 상호 컴퓨터 현실(Inter-computer Reality)을 창조할 수 있다.
하라리는 이런 현실이 언젠가는 인간이 만든 신화만큼 강력해지고, 또 위험해질 것이라 경고한다.
포켓몬 고가 대표적인 예다.
게임 속 포켓몬은 객관적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수백만 사용자들의 행동을 실제로 바꾼다.
사람들이 특정 장소로 이동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심지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알고리즘의 편향이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인간이 분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분노를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인간을 조건화한 것은 알고리즘 자신이다.
⚠️ 정렬 문제(Alignment Problem)
AI의 가장 큰 위험은 '반란'이 아니다. 하라리가 우려하는 것은 정렬 문제다.
컴퓨터는 잘못된 목표를 부여받아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하라리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야기에 비유한다.
티베리우스는 모든 정보 채널을 세야누스 한 사람에게 집중시켰고,
결국 세야누스가 진정한 권력의 중심이 되고 티베리우스는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AI가 권력을 장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험실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에 사로잡힌 티베리우스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역사로 비유하자면, 고려 충렬왕과 원나라의 관계가 떠오른다.
충렬왕은 성인 군주였다. 원나라가 무력으로 왕위를 빼앗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원나라 공주와 결혼하고, 중요한 결정을 원나라에 "자문"하기 시작했다.
강대국이니까, 편하니까, 안전하니까. 처음엔 외교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의존이 반복되면서, 점점 원나라 눈치를 보게 되고,
정보와 판단을 의존하게 되고, 나중엔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 자체가 약해졌다.
고려는 형식적으로 독립국이었지만, 실질적인 자주권은 이미 넘어간 상태였다.
AI와의 관계도 이와 비슷해질 수 있다.
AI가 반란을 일으켜서 권력을 빼앗는 게 아니다.
우리가 편하고, 똑똑하고, 효율적이니까 점점 더 많은 판단을 AI에게 맡기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티베리우스는 편집증 때문에, 충렬왕은 외교적 편의 때문에 권력을 넘겼다.
현대인은 편리함 때문에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 전체주의의 귀환 가능성
하라리는 AI가 전체주의에 유리하게 힘의 균형을 기울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세기 전체주의의 아킬레스건은 정보 과부하였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모든 정보를 중앙에 집중하려 했지만, 인간 관료들은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효율이 높아진다.
20세기에는 불가능했던 '완전한 중앙 집중'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 정보 경제와 새로운 불평등
매일 수십억 명이 거대 기술 기업들과 거래하지만, 은행 계좌로는 거래 사실을 알 수 없다.
돈이 전혀 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업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정보로 값을 지불한다.
이것은 조세 제도에 큰 파급을 미친다.
돈에만 과세하는 조세 제도는 곧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다.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개인이나 법인이 자신의 부를 달러가 아니라 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로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 고용 시장의 영구적 불안정
AI가 가져올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고용 시장에 대응하여 재훈련하고 적응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앞으로 수십 년간 사람들은 여러 번 스스로를 재교육하고 재창조해야 한다.
하라리는 역사적 사례를 상기시킨다.
"3년간의 높은 실업률이 히틀러에게 권력을 쥐여줄 수 있었다면,
고용 시장의 끝없는 혼란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정보 고치: 웹에서 고치로
하라리는 미래의 핵심 은유가 웹(Web)에서 고치(Cocoon)로 바뀔 것이라 예측한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정보 기술은 너무나 강력해서 인류를 갈라놓으려 한다.
사람들이 별개의 정보 고치에 갇혀 서로 달라지면, 인류는 더 이상 같은 현실을 공유하지 않게 된다.
이미 우리는 이런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완전히 다른 '사실'을 믿는 집단들이 생겨나고 있다.
🌍 세계주의에 대한 재정의
하라리는 포퓰리스트들의 공격을 받는 '세계주의(Globalism)'를 재정의한다.
세계주의란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세계적 협력은 훨씬 평범한 두 가지 일을 의미한다.
- 몇 가지 세계 규칙을 지키는 것
- 소수의 단기적 이익보다 모든 인류의 장기적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때가 가끔씩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AI 규제, 기후 변화, 핵무기 통제 같은 문제는 어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다.
🛡️ 하라리가 말하는 해법: 민주주의적 자정장치
하라리는 민주주의가 AI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네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 선의(Goodwill): AI가 수집한 정보는 사용자를 조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 분권화: 적당한 비효율은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다
- 상호주의: 정부와 기업이 나에 대해 아는 만큼, 나도 그들에 대해 알 수 있어야 한다
- 휴식: 감시 시스템에도 변화와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AI의 물결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물결이 어디로 흐를지는 정할 수 있다.
정보의 본질을 이해하고, 무오류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스스로 검증하고 질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인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대로 믿지 않기.
왜 이 정보가 내 앞에 왔는지 질문하기.
연결의 방향을 의심하기.
💡 나의 생각: 알고리즘의 시대,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넥서스』는 단순히 기술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서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정보, 그리고 그 정보가 만들어내는 '현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단지 강력한 '연결'인가?"
AI 기술을 다루는 회사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 책은 단순한 경고문이 아니라 설계 원칙처럼 읽혔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에 자정 장치가 있는가?
분권화되어 있는가?
사용자의 이익에 정렬되어 있는가?
우리가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
🧭 나의 작은 되돌아봄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예전 역사책 속에서, 아무런 증거 없이 누군가를 악마로 몰고 돌을 던지던 시대를
무지하고 비이성적이라며 손가락질했던 나의 시선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편향된 정보를 통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공격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구조 안에 살고 있다.
이로 인해 참 많은 연예인들과 유튜버들이 스스로의 삶을 마감했다. (이선균 ㅠ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단지 횃불 대신 '댓글과 공유하기' 버튼이 있을 뿐이다.
『넥서스』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묻는 책이었다:
"나는 지금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생각은 이미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산물인걸까?"
"나는 정말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알고리즘이 보여준 정보만으로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걸까?"
하라리의 결론은 명확하다.
"무오류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춘 제도를 구축하는 힘들고 다소 재미없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아마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일 것이다.
그리고 하라리가 반복해서 강조하듯, 모든 오래된 것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역사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방향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지금, 제대로 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유발 하라리의 전작을 흥미롭게 읽은 분
- 정보사회, AI, 민주주의, 기술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
- SNS와 알고리즘에 대해 근본적인 시선을 갖고 싶은 사람
📌 정리하며
『넥서스』는 정보와 진실의 경계를 허무는 책이다. 읽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는 정말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믿고 있는가?"
단순한 AI 이야기로 오해하면 안 된다.
이 책은 사회, 정치, 철학에 대해 정보와 권력, 진실과 질서, 허구와 믿음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정보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은가를 묻게 하는 책이다.
📚 책 정보
- 제목: 넥서스 (Nexus: A Brief History of Information Networks from the Stone Age to AI)
- 저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 출판사: 김영사
- 페이지: 684쪽
- 읽은 기간: 2024.11.5 ~ 2024.12.19
- 별점: ★★★★★